# 풍경 하나.
수년 전. 남대문 부근의 패션몰 공연장에서 펼쳐진 여행스케치(여치) 콘서트.
일찌감치 여치의 팬이던 소년(?)에겐 당연한 행차였다. 마침 새로이 만나기 시작한 사람과 함께였다. 말하자면, 기쁨 두 배.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함께 볼 수 있어서. 공연은 미친 듯이 좋았다. 특히나 (남)준봉 형의 비범함(?)이 유난히 빛을 발했다. 그 감흥을 온전히 가져가려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현장에서 라이브콘서트 앨범(2CD)을 구입했다. 집에 가자마자, 뜯었다. 두근두근 쿵쿵. 하악하악.

어라? 그런데 CD가 달랑 하나다. CD1은 있는데, CD2가 없다. 눈물 그렁그렁.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준봉 형 앞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이 사태(?)를 어찌하냐고. 물론, 나는 그저 여치의 팬 일뿐, 어떤 일면식도 없는 사이. 기대 않았는데, 답장이 왔다. “헉 이런 일이? 말두 안 돼...”라는 말과 함께,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그리고 앨범을 하나 더 받았다. 파손품이었으니 당연한 일. 참, 그때 만났던 사람은 어찌 됐냐고? 뭐 그 만남, 오래지 않았다. 여치 탓인가.^^;;


# 풍경 둘.
역시나 수년 전. 서울 근교의 놀이동산. 봄으로 기억한다. 장미가 화사했고, 온갖 꽃들이 만개했다. 흠, 나의 행차를 반기는 것인가! 역시나 만남이 얼마 되지 않았던 여인과의 첫 번째 소풍. 놀이기구에 몸도 실어보고, 꽃들의 향연을 만끽하며, 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익숙한 노래가 귀를 자극한다. 오오오, 여치 아닌가! 놀이동산 내 공연장에서 여치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냉큼 공연을 보자고 끌고 자리를 잡았다. 익숙한 레퍼토리가 연신 흘러나왔고, 노래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함께 온 사람은 여치를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공연이 끝날 때까지 붙어 있었다. 여치 덕분에 더욱 즐거웠던 그날의 소풍. 참, 함께 한 그 사람은 어찌 됐냐고? 역시나 그 만남, 오래지 않았다. 또! 여치 탓인가.^^;;



한겨울, 다시 나타난 ‘여치’, 반갑다 여치야!


한 해가 거의 얼마 남지 않은 때, 세밑. 지난달 29일, 홍대 부근의 ‘빵’.
몇 년 간 종적을 감췄던 여치(여행스케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경오염이 심해 그동안 떠나있었던 걸까. 다시 돌아온 여치가 내 마음의 환경정화를 위한 것인양, ‘왠지 느낌이 좋아’.

그들은 내 이십대와 함께였다. ‘새장 속의 나’로 지내던 내게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라며 삶의 한 단면을 알려줬고, ‘초등학교 동창회 가는 날’의 설렘과 ‘향수’를 곱씹게 만들어줬다. ‘옛 친구에게’ 보내는 ‘진심’을 노래로 표현하게도 해줬다.

여행을 떠날 때면, ‘여행스케치’를 목청껏 불러 제쳤고, 별 덮인 밤하늘을 하얗게 셀 때면, 나는 읊조렸다. ‘별이 진다네.’ 그런 여치였다. 2002년 9집 앨범이후 오랜 공백. 나는 서른 진입 즈음이었다. 이십대는 여치의 실종과 함께 서서히 접히고 있었다. 내 이십대의 별이 졌던 그때. 별이 지는 어제.


그래서 더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이 오랜만의 등장. 앨범을 들고 왔던 이전과 좀 다르다. 이번에는 다이어리와 함께다. 『2009 여행스케치 다이어리 & 미니앨범』.

불쑥 내 가슴 속에  이십대의 어떤 기억을 반짝이게 만든 그 이름, 여행스케치. 공연 시작 즈음, ‘빵’은 빽빽했다. 옛 친구를 만나는 양,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찾아왔을 터이다. 수년 째 ‘인기그룹’, 여행스케치를 만나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세밑의 빡빡하게 막힌 차와 인파를 뚫고.

저녁 8시7분, 머리를 질끈 동여맨 조병석 옹과 예의 개구쟁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넥타이 맨 남준봉 형이 조용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듦에도 그들은 한결 같았다. 오랜만임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만남. 바로 엊그제 만났던 것 같은 친근함.

그래, 그것이 여치 아니겠는가. 한때 13명까지 지저귀던 여치가 이젠 2명으로 재편됐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여치’가 살아 숨쉰다는 것. ‘빵’에서의 공연은 그들에게도 어떤 추억을 상기시켰나보다. “초창기 공연 때가 생각나요. 여러분보다 저희들 숫자가 더 많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첫 번째 연주가 시작된다. 8집의 ‘왠지 느낌이 좋아’. “널 그릴 때마다 왠지 느낌이~~~ 좋아~♪”라던 날 달뜨게 만든 그 선율. 그리고 휘파람.



노래 중간, 병석 옹이 “여러분 복 많이 받으세요. 정말”이라며 랩(?)을 구사해 물의(?)를 일으켰지만, 첫 선곡은 탁월했다. 썰렁함은 20여년이 돼도 여전하다며, 준봉 형이 병석 옹을 타박했지만, 그 타박 또한 여전했다. 맞다, 여치맞다.

느낌 좋게, 기분 좋게, 활동했던 기분도 난다며 이 곡을 선곡했다던 그들은 그동안의 경과를 살짝 보고했다. 6년 동안 놀기도 하고, 사업도 했단다. 마냥 널부러져 있었던 건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 음악도 하면서 음악 작업을 계속 했다. 그럼에도 다시 새로운 노래를 들고 나온 것이 가장 반가운 선물이다. 연말 동창회 온 기분도 난다면서 선곡한 노래는 ‘초등학교 동창회 가는 날’. 원래는 ‘국민학교 동창회 가는 날’이었는데, 정부시책의 변경에 따라 바뀐 제목.

그렇게 이 쇼케이스 자리에 옛 멤버들이 와 있다고 했다. 불쑥 이 노래 들으면서 며칠 전 만나기로 했다가 신년으로 만남을 연기한 초등학교 친구들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했던 그 시절 친구들은 아직도 날 기억할까 /장난꾸러기 봉수와 동철이는 아직도 그대로 일까 /빨리 좀 만나봤으면♬”


여치 노래 가운데, 내가 정한 베스트 2곡 중 하나인, ‘옛 친구에게’가 동창회를 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내 인생의 한 친구가 떠올랐다. 노래는 그런 내 마음을 대변했다. “지난 내 어리석음 이젠 후회해 하지만 넌 지금 어디에… 아직도 나를 기억 한다면 날 용서해주오♪” 여치는 밴드활동을 했을 때, 이 곡이 1부 엔딩곡이었을 정도로 비중 있는 곡이라고 했다. 병석 옹 왈, “연말 되면 한 번씩 만난 사람을 기억해보고 그러잖아요.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별이 지고 뜨는 우리의 아름다운 밤


마침내, 여치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해도 무방한
별이 진다네’의 연주시간. 전역을 앞둔 말년휴가 때 병준 옹이 만들었다는 이곡. 제작비 절감과 색다른 음악적 시도를 위해 자연의 소리를 담은 이곡. 어스름 깊은 밤, 고즈넉이 들리는 듯한 그 익숙한 개구리 소리는 언제나처럼 내 마음을 달랜다. 그 어느 시골길에 와 있는 마냥, 한없이 그 소리에 빠져드는 밤. 여치의 데뷔곡.

“김범수, 성시경, 레이지 보이 등이 리메이크했지만, 역시 원곡이 제일 좋죠?”라고 묻는 여치에게, ‘암 그럼, 그렇지 말고’ 고개를 끄덕끄덕. 누가 어떻게 잘 부르고 해석해도,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어찌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짙어 가는데” 그것을 어찌 다른 가수에게 맡긴단 말인가. 오로지 여치! 오직 여치!



그리고 이번 신곡들과 미니 앨범에 대한 소개. 7곡의 노래를 다이어리라는 새로운 형식과 합궁시켰다. 예쁘다. 여행스케치의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상의 소소한 느낌을 메모처럼 적은 글을 담았어요. 저희들 흔적이 완전 담겨 있어요. 15000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음악적 수준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 퀄리티에 만족하실 거예요. 사진, 글, 음악이 담겨 있는데, 10%를 저희들이 채웠다면, 나머지 90%를 여러분이 채워주세요. 다이어리가 새로운 시작을 뜻하기도 하잖아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제작했어요. 여러분의 소소한 일상을 적어나가면 좋은 일기가 될 거에요.”

이번 다이어리 미니앨범의 타이틀 곡은 ‘별이 뜬다네’다. 뭔가, 매칭이 되지 않는가. 맞다. ‘별이 진다네’와 맞물린다. 이 곡, 준봉 형의 반대가 심했단다. “‘별이 진다네’의 감성을 간직하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왠지 난도질하는 느낌이었어요. 2주간 병석이 형이랑 얘기를 안 했을 정도라니까요. (웃음)”


여치의 멤버가 둘로 되면서 생각을 제한을 두지 말자고 했다. 좀더 자유롭고 열어두고 싶었단다. 병준 옹은 그렇게 ‘별이 뜬다네’의 의미를 설명한다. 이 곡은 랩에 가깝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별이 진다네’와는 완전 다르다. 여치의 예전 노래를 안다면, ‘어라?’ 소리가 나올 정도다.

피처링도 있다. 예전 라디오방송 때의 게스트 인연을 고리 삼아 배우 김정은 씨를 무작정 찾아가 부탁했다. 흔쾌히 승낙한 덕에 김정은 씨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나 항상 그대를’ 부를 때의 그 목소리가 맞다. 다만, 준봉이 형은 아쉬웠단다. 노래 연습 시켜주면서 하루를 ‘뽀송’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연습을 무척 열심히 한 덕에, 녹음이 1시간 만에 끝나버렸단다. 아뿔싸.



사실 ‘별이 뜬다네’는 준봉이 형도 처음엔 반대를 했지만, 주변에서도 전반적으로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병석 옹은 결단을 내렸다. 모니터를 해서 반응이 좋으면 앨범에 싣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묻어버리기로. 반응은 의외로 “기분이 좋아진다” “좋다” 등이 많았다. 물론 모니터 집단이 준봉 형 회사 직원이었지만. 그것이 ‘별이 뜬다네’의 탄생 비화다. 자칫하면 세상에 빛을 발산하지 못할 뻔한 어떤 별의 이야기.

“(‘별이 진다네’와) 글자 하나만 바꿨을 뿐이지만, 분위기가 많이 다를 거예요. 그런데 음반 매장에는 없어요. 다이어리로 분류가 돼서 서점이나 팬시점에만 있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에요.” 내 마음에도 별이 떴다. 오랜만에 여치라는 별이 다시 떴다. 그렇게, 별은 내 가슴에.


신곡이 이어졌다. 새롭게 출발하는 연인을 위한 ‘Y의 축복송’은 자신의 이름에 이니셜 ‘Y’가 들어가는 분들이 좋아한단다. 연희, 수연 등등. 가사는 예쁘고, 축복의 느낌이 가득하다. 시절인연을 만나 사랑을 새로이 가꿔나가는 당신에게 이 노래, 권한다.

이어진 병석 옹의 솔로곡 ‘눈물이 난다’. “가사 내용을 들으면 알 거예요. 난 하기 싫었어요”라는 준봉 형의 투덜거림에, “넌 어려서 몰라~”로 퉁쳤던 병석 옹의 애잔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청춘’이라는 부제마냥,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창가에 내리는 눈을 보니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던 어떤 청춘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 노래. 엄혹한 시대에 직면한 지금-여기의 청춘에게 바치는 여치의 헌사 혹은 위로 같은 노래.

배우 조승우가 나온 CF에 삽입된 ‘마이 프렌드 굿 프렌드’도 흘러나온다. 눈앞에 짠하게 펼쳐지는 프라하의 어떤 풍경. 아, 떠나고 싶다. 봄이 오면, 역시나 프라하. 우리 함께 떠날래요? 아름다운 밤이다. 별이 지고 뜨더니, 시작하는 연인들의 시절인연을 축복하고 청춘의 눈물을 닦아주고선, 프라하까지 펼쳐놓다니.



세상 모든 여치들의 합창


“세상에 친구만큼 좋은 것이 있겠느냐”며 애초 언급한 대로, 관객석에 있던 옛 멤버들을 무대로 불러 모은 여치. 89년 12월9일에 1집 첫 공연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19주년이 막 지난 셈이다. ㅊㅋㅊㅋ. 2009년은 데뷔 20주년. 와, 놀랐다. 여치가 저렇게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 세월을 머금었다는 것이. 나도 따지자면, 거의 여치와 함께 한 20여년이 아닌가.

처음 그룹을 조직할 때, 산파역할을 했다는 신동철 대장에 대해 병석 옹과 준봉 형은 깍듯했다. 신 대장 왈. “둘이서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힘겨워 보이기도 하지만, 잘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옛 생각도 나네요. 통기타 2개 들고 강원도를 돌아다니며 개구리 소리를 녹음하던 때가. 멋진 공연을 해보고픈 간절한 생각도 있고. 20년 흐른 여치 공연에도 함께 자리를 하고 싶어요.”



지금은 유명 작사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윤사라 씨(김범수 ‘보고 싶다’, 김종국 ‘사랑스러워’ ‘편지’, 제이 ‘어제처럼’, 이기찬 ‘바보’, 박효신 ‘좋은 사람’)도 자리에 올랐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요즘 가장 즐겨듣는 노래의 작사가다. 얼마 전 막을 내린 TV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삽입곡인 성시경의 ‘연연’. 여치에서 나와 1집 앨범 ‘천국에서 길을 잃다’를 냈으나, 결국 길 잃고 작사에만 전념하고 있는 음악인. “당시 3만 몇 천 장이 팔렸다. 지금이라면 ‘대박’인데... 오늘 오빠들 노래하고 랩하는 것을 보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풋풋한 그 느낌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도 좋고요.”


그리고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의 보컬을 담당했던 김수현 씨. 지금은 결혼 8년차 학부형이자 아이들 음악을 가리키고 있단다. “병석 오빠의 썰렁함은 세월이 가도 안 변하네요. 약도 없고요. (웃음) 8년 여치에서 활동했는데 오빠들이 멋있어 보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와, 잘한다. 연애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랩 할 때는 안쓰럽기도 했어요. 이제는 확실히 여치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노래,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가 울려 퍼졌다. 이미 여치에서 빠져 나갔으나, 여전히 ‘여치人’일 수밖에 없는 여치들의 앙상블. 빵은 빵빵하게 터질 듯이 환호와 열광, 박수가 함께 했다. 여치가 뿌린 행복바이러스가 퍼지는 공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다. 노래 한곡의 찰나처럼 스쳐가는 행복에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것. 흥얼흥얼 나는 씹고 또 씹었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세션하는 3명도 함께 초대됐다. 건반의 정연경 씨, 일렉기타의 김민교 씨, 건반의 한재성 씨. 그리고 이어진 노래는 배우 이나영이 나온 화장품 CF의 삽입곡이기도 했던 ‘기분 좋은 상상’. 신년을 앞두고 이런 노래 흥겹다. “어느 날 천사가 네게로 와서 너의 소원 하나를 들어 준다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할래 / 커다란 종이비행기를 접어 그녀와 함께 타고 솜사탕 같은 구름에 가득 이렇게 쓰고 싶다고 / loving you, I`m loving you”

‘기분 좋은 상상’으로 흥겨움과 사랑이 그렇게 두둥실 떠올랐다면, 프로포즈 노래인 ‘치키치키 러브송’이 대미를 장식했다. “치키치키 Love forever oh happy day / 자기자기 나를 부르는 너 상상에 / 치키치키 Love song for you / 날 만난 뒤로 지기지우보다 널 아껴줄 오직 한사람 그건 바로 나야 나”


물론 그것이 진짜 끝은 아니었다. 5천년 역사에서 제1의 제도라는 ‘앵콜’. 오랜만에 듣는 열화와 같은 앵콜이었을 터. 여치의 대표곡 중 하나인 ‘여행스케치’가 락처럼 울려 퍼졌다. 빵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세밑의 여치 쇼케이스는 그렇게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2009년 여치의 데뷔 20주년을 앞둔 워밍업으로서는 충분히 좋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여치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2009년의 행복이 될 수 있겠다. 우선 1월6일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열리는 ‘故김광석 13주기 추모공연’에 여행스케치도 참여하고, 2월 초순부터 대학로 스타시티에서는 한 달간 여치의 공연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20주년 세상 모든 여치들이 함께 하는 기념앨범, 와우, 전국투어도 당연히 있을 터. 전국 곳곳에 여치 노랫소리가 퍼질 것이다. 부디 그들이 오면 반겨주시라.

올해는 더구나, UN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 그렇다면 별을 노래하는 ‘여행스케치의 해’가 되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별이 진다네’로 시작해 20년 만에 ‘별이 뜬다네’로 돌아온 여치에게 덕담을 해 준다면, ‘2009년에는 분명 ★이 뜰거야’.

참고로, 데일리메일(
www.dailymail.co.uk)을 보면,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된 ‘별의 일생’이 게재됐다. 볼만하다. 별의 생성부터 소멸까지가 담겼다. 아, 별나라 여행, 떠나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다른 어디라도. “여행을 떠나 기차를 타고 / 들판을 넘어 산속 계곡 따라 / 자연을 벗 삶아 노래도 불러보고 / 동굴 속에서 소리도 쳐 보네♪” 이 노래, 들린다면, 내가 여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달라.


추신. 쇼케이스를 마치고 버스로 이동하는 길. 눈이 날리고 있었다. 딱 한주 앞선 12월22일에도 쇼케이스를 마치고 펑펑 함박눈이 내렸는데, 준봉형은 오한과 발열을 동반한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준봉 형, 또 독감 걸리지 않았을까. 참, 12월31일은 병석 옹의 생일이었다. 늦었지만, 축하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치의 스무 살. 그 성인됨을 나는 축하한다. 별이 지는 어제, 별이 뜨는 오늘. 별은 여전히 내 가슴에.

[YES24 기고, 말하자면 원본. 20090105]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랑은~,
유리창 건너에서~
말 없이도 종이 위에 전달되는 설렘으로~
 

"DO U WANT TO MEET?"



뻔하지만,
음악과 스토리텔링이 잘 어우러진 중독성 영상.
보고 나면,
아마 당신의 창가 너머를 훌쩍 보거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걸!

만든이, 재능 있어 뵈네.
PATRICK HUGHES

알려준,
호참님 감솨~^.^

커피 한잔의 스토리텔링도 이렇게!

뱀발.

하나. 그런데 나는,

"DO U WANT TO MEET?" 보다는,
"I WANT TO MEET?" 가 더 낫다고 보네.
당신은 어때?

하나. 주인공 여자,
참 예쁘죠잉~
완죤 맘에 들어, 딱 내 스탈이야~ 하악하악.


하나. 주인공 남자,
거울 앞에서 포즈 잡을 때,
설렘과 떨림이 잔뜩 묻어나는데, 참 구엽지 않아?

하나. 물 많이 마셔~
오늘, 물의 날!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 경고. 섹스나 자지, 보지와 같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거나 불쾌감을 느끼는 분들은, 아래 글을 무시하는 게 좋을 듯!)
 
오랜 2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12일 개봉하게 된 영화 <숏버스>.
물론 삭제는 안 됐지만, 모자이크 처리해서 스크린에서 상영된단다.
☞ 실제 성행위로 소통단절 극복 그려…‘숏버스’ 12일 개봉

그렇게 벼르다가,
작년 연말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이 영화를 마침내 만나게 됐을 때의 두근거림, 아직 기억난다.
에너지, 충만만땅이었고, 나는 흥분하면서 영화를 봤다.
물론 그 흥분이 성적인 것이 아님은 아시겠지.ㅋ

영화 바깥에서 언론 등이 떠들어대는 것과 달리,
영화는 '실제' 섹스나 삽입, 자지와 보지 등 성기 노출은 주요 내용이 아니다.
그걸 이슈화하고픈 이들(아마도 영등위 등...ㅋ)의 대가리에 똥이 들고, 
자지가 꼬부라진 탓일 게다.

그건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연출한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은,
“삶의 다른 면에 대한 은유의 하나로 섹스라는 언어가 사용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등위만 이해 못한 ‘숏버스’의 언어)

이것 역시 확인 가능하다. 영화는 전혀 '야하'지 않다.
워낙 '고급스럽고 우아한'교육을 받아서,
자지나 보지의 노출이나 섹스행위에 불쾌감을 가지도록
DNA가 작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래, 서독제 당시 <숏버스>를 본 뒤의 감상문.
당시 상영불가능 상태에서 적은 글인데, 지금처럼 일반 개봉관에서 상영이 될 것이라고 기대 못했다.
그래서 무척 반갑다, <숏버스>!!!


(* 내가 알기로, 자지와 보지는 순우리말 표준어로 비속어나 은어가 아닌 각 성별의 성기를 지칭하는 적확한 단어다. 유명 뮤지컬 배우 최정원은 최근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출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젠 보지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쑥스럽지 않아요. 사실 우리 신체기관 중에서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하는 곳이 있나요. 그곳으로 어머니가 저를 낳아주셨고, 여자로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고귀하기까지 해요." 빙고~)

=====================================



안녕, 내 이름은 숏버스.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나는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없어. 그러면서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무슨 말이냐고? 그런 모순 섞인 말이 어디 있냐고.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없으면서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영화라니. 허허, 그러게. 하지만 좀더 들어봐. 그러면 이해하게 될 걸?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런 얄궂은 운명을 지닌 영화가 됐어. 알다시피, 나는 일반 여느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해. 영화제에서만 가능하지. 심의 때문이야. 나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어. 이 판정은 ‘상영 불가능’과 같은 말이야. 제한상영가 영화를 틀 수 있는 극장이 없거든. 그러다 지난 7월 헌법재판소가 제한상영가 등급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어.

나를 수입한 스폰지도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상대로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 취소 소송을 냈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어. 조만간 제한상영가라는 딱지를 붙인 영화는 없어질 거야. 불행은 더 이상 지속돼선 안 되지. 내가 마지막이 됐음 좋겠어. 더 이상 이런 불행한 역사가 계속 돼선 안 되지. 암, 그럼 그렇고말고. 물론 비슷한 시기에 나와 같은 처지를 겪고 있는 몇몇 동지들도 있긴 한데, 그들과 내가 마지막 열차여야 해. 


그러나 아직 나를 정식 극장개봉 영화로 볼 수는 없어. 그건 제도적 법규 정비와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야. 어이없지만, 그것이 지금-여기의 관람 현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변칙 상영이 불가피해. 영화제 등의 합법적인 경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아니면 인터넷을 통한 어둠의 경로를 활용하던가. 그래도 기왕이면 스크린이라고, 말 많고 화제 만발한 나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올해도 몇몇 영화제를 통해 나는 관객들과 만났어. 다행이었지. 날 수입한 회사에서도 그런 식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고. 


서독제 2008에 어김없이 나타난 <숏버스>

정말 전혀 과장 않고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시국을 봐 별별일 다 있었던 2008년. 나라고 순탄한 것만은 아녔지만,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에도 나는 달리게 됐어. 지난 11일부터 막을 올린 34번째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가 날 빠뜨리지 않았지.

가만 보면 난 꽤 인기 있는 스타야. 크건 작건, 각종 영화제가 날 불러주잖아. 종종 언론도 타고 말이야. 레드 카펫이라도 깔아야 할 판인데, 누가 협찬 좀 안 해 주나? 하하. 농담이고. 난 그렇게 게릴라야. 치고 빠지지. 한곳에 머물지 않아. 여기저기 ‘숏버스 바이러스’를 뿌리며 다니는 노마드 같은 존재. 뭐? 숏다리라고? 에이, 농담은 이제 그만~ 

내 아버지, <헤드윅>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작품을 연출한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그런 말도 했더군. 대한민국에서 나를 제대로 만날 수 없다면,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라도 꼭 만나라고. 허참, 이건 불법을 자행하란 얘긴데.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좀더 많은 사람과 만나 소통하길 바라는 게지.


무엇보다 풀고 싶은 오해가 있어. 난 세간에 일부 알려진 것처럼 ‘바바리 맨’이 아냐. 바바리 맨은 맥락 없이 바바리를 열어젖혀. 그래서 혐오감을 주지. 한마디로 외설이자 변태.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성기 노출부터 삽입섹스, 갖가지 체위들, 난교 등으로 화제가 되고 논란을 낳았다고? 하하.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건 제대로 영화를 보지 않은, 느끼지 못한 사람들의 입방아야. 그저 살 보이고 성기나 음모가 노출되면 호들갑부터 떨어대곤 하는 찌질한 사람들이 날보고 깜짝 놀라 확성기를 틀어놓은 탓이지.

성기만 노출되면 포르노라고 단정 짓는 그 단순함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워낙 포르노를 많이 봐서 그런 거야, 아님 DNA 자체에 미학이 결핍돼서 그런 거야? 이왕 나온 것, 이것 꼭 물어보자. 신체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한 사람을 짓누르고 죽여야 되는 마이너스의 태도를 지닌 폭력이 나쁜 거니, 성기가 나오지만 두 사람이 결합하는 플러스의 태도를 지닌 섹스가 나쁜 거니? 내 아버지도 물었어. “여성이 성폭행당하는 영화는 개봉할 수 있고, 여성이 오르가슴을 찾는 영화는 안 된다는 걸까.”


소통과 생의 긍정을 선사하는 이야기

내 속살을 좀더 드러내볼게. 우선 호사가들이 떠벌린 섹스 운운은 내 진면목이 아냐. 나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한 흐름일 뿐이야. 참, 내 이름부터 궁금할 텐데, 그건 노란 스쿨버스를 탈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의미하는 은어야. 그것이 내게선 언더그라운드 살롱의 이름이지. ‘재능 있고 하자 있는 사람들의 살롱’. 그래, 메타포(은유)야.

내 안에선 성(性)과 관련된 아픔이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나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섹스 테라피스트, 소피아가 있고, 남자친구 제이미를 사랑하지만 어릴 적 성매매에 대한 죄책감으로 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동성애자, 제임스도 있으며, SM플레이를 직업으로 하지만 진정한 연인을 찾고픈 세브린도 있지. 각자 나름의 속사정을 지닌 이들이 모인 곳이 바로 나이기도 하지. 

그들이 엉키고 뒤섞여. 처음에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속박 받고 관계 정립에서도 그 주체가 자신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어. 그리고선 소통이 안 된다고 쩔쩔매. 하지만 내가 누구야. 난~ 섹스하고 싶으면 섹스하게 했을 뿐이고. 얘기가 필요하면 얘기를 나누게 했을 뿐이고. 그저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통’하는 것이 즐거웠을 뿐이고. 그러다 혼란도 겪지만 난 시종일관 발랄한 풍경을 유지하지. 위안도 주고.

특히 이런 기억도 나. 게이가 아닌 척 살아오면서 고통을 겪은 전직 뉴욕시장 할아버지가 젊은 청년의 따뜻한 키스로 위로받고. 격렬하게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자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소피아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 같은 것. 뭐랄까. 내 안에선 평화가 느껴져. 

그 평화로운 감정. 그게 뭘까. 맞아. 포르노라고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지. 그 사람들은 아마 나를 음침하고 탁한 매음굴 정도로 여길 거야. 어떤 정서적인 환기가 있는지도 몰라. 관계가 구축한 행복도 몰라. 그저 ‘섹스’라는 피상적인 행위에만 눈을 두는 게지. 과연 나는 없는 얘길 한 걸까. 이 세상에 섹스가 없고, 성기는 없는 것, 아니잖아.

거듭 말하지만, 나에게 섹스는 관계망을 다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야. 위로하거나 화를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것을 몸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러니까, 한편으로 섹스는 언어일 뿐이야. 그것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변태지. 그들은 나를 보고 성기가 솟구치나봐. 다른 사람에게 갑작스레 달려들게 될까봐, 그렇게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까봐, 겁내고 있는 건가봐. 아주 웃겨~ 

나도 물론 힘들어.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길 들어줘야 하잖아. 그들이 쏟아내는 감정만 받아내는 것도 벅차. 그렇지만, 난 알아. 혼란과 방황을 겪으면서 그들은 한발한발 나아가. 그렇지만 그게 문제의 말끔한 해결은 아냐.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나의 충만한 에너지 덕분으로 도시의, 지구의 불빛이 들어왔다손, 그 쌓이고 중첩된 문제가 일거에 날아간 것은 아니라고. 살아가면서 그들은 또 비슷한 문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할 거야.

그러면 그때는 그때 방식대로 한발한발 나아가면 된다는 거지. 그게 다야. 그건 삶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닌, 생의 밑바닥에서 끌어낸 긍정이야. 난 내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그걸 느꼈어. 이토록 사랑스러운 나. ^^


아니 이런 나를 두고 외설이니, 포르노니 하면서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가 안 돼. 날 제대로 보긴 한 거야? 미학적 예술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날 볼 자격도 없어. 고로 내 결론은 이래. 나를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미학적) 후진국임을 증명하는 사례라규! 그래도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지만은 않을 거야.

상영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서독제 해외기획전에 ‘숏버스’를 추천한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 GV시간.

Q: 이 영화를 추천했는데, 이유는 뭔가? 
“작년에 스폰지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 영화를 봤다. 혼자 갔는데, 관객 5~6명 정도가 있었다. 여자는 나 혼자였다. 영화 볼 때 눈물에 인색한 편인데 눈물이 났다. 특히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고 숏버스에 사람이 모였을 때, 소피아의 바스트 숏을 보여주는데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바스트 숏에서 감정을 이렇게 끌어올릴 수 있다니, 놀랐다. 이 작품이 (일반 극장에서) 상영금지된 사실에 화가 났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으면 내 체험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었을텐데. 왜 단지 몇 사람이 이 권리를 박탈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Q: 두 번째 보니까, 어떤가.
“처음 봤을 때는 비도 오고 시나리오는 나왔는데 펀딩은 안 되고, 외롭고, 감정이입을 잔뜩 해서 봤다. 그런데 오늘 보니 해피하게 느껴지는데 이유가 뭘까. 모두 정전이 됐는데, 딱 한 곳, 숏버스만 정전이 안 됐다. 이것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숏버스가 친근감을 주는 이유가 집단난교 장면에서였다. 누군가가 소피아에게 “구경하는 것도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잖나. 그게 참 인상 깊었다. 우리는 참 배타적인 곳에 살고 있질 않나. 우리는 비밀집단이 생기면 배타적이 되고 그러는데, 숏버스는 오랫동안 경험 못한 평화로운 무경계의 공간 같았다. 우리 가까운 곳에 그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숏버스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하고 절실한 느낌이 들었다.”

Q: 남자친구나 남편과 함께 숏버스 같은 곳에 갈 수 있나. 

“<미쓰 홍당무>를 끝내고 건강이 좀 나빠져서 ‘야메’ 침술원을 다니고 있다. 비밀번호가 있고 점조직처럼 돼 있다. 어머니와 같이 갔는데, 아주머니들이 부끄럼도 없이 찜질방보다 노출이 많은 정도로, 침 맞으면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런 일상을 영위하고 있더라. 공동집합체 같았다. 침 놔주는 분도 비주얼이 꼭 무당 같은데, 여자 분들이 그 분 앞에선 충실한 신도가 된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모인 사람들일 텐데, 그 공간도 꼭 ‘숏버스’ 같다. 무엇보다 그 공간은 평화롭다. 각자 상처를 갖고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일 때 생기는 평화로운 모드는 특별하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숏버스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갈구하는 건 아닐까. 통하고 싶은 거다. 아마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어도 같이 나누고 싶을 것 같다. 좋은 건 나눠야지. 함께.”

[상상마당 매거진 기고]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스트우드는 어떻게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가

<그랜 토리노>, '올해의 영화'로 우선 '찜' 해놓다


여기 이 영감,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홀아비. 장성한 아들 둘은 따로 떨어져산다. 부자간 별다른 애틋함이라곤 없다. 그의 옆에 남은 건, 늙은 개 한 마리, 이름도 고상하여라. 데이지. 늙은 개 키우면서 혼자 사는 늙은이. 거참, 누가 보면 혀를 끌끌 찰 조합이다.


그래 봬도 그는 전쟁용사다. 한국전에 참전했고 적군을 살육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퇴역군인이다. 포드에서 일했고 1972년 산 자신이 조립한 ‘그랜 토리노’를 금과옥조로 아낀다. 일본차 세일즈를 하는 큰 아들에게 늘 불만이다. 그 좋은 미국차 브랜드 놔두고 왜 하필, 일본차냐고. 눈치 챘겠지만, 그에게 아시아인, 경멸의 부스러기다. 왜 그들이 자신의 동네에 들어와 살고 있는지도 짜증난다. 교회도 싫다. 아내 때문에 다녔을 뿐. 아내의 유언 때문에 그를 챙기는 신부도 귀찮다.


그렇다. 그는 고집불통 보수주의자다. 성조기 나부끼는 그의 집을 보면, 이 사람, 나름 애국주의자구나 싶다. 그러면서 인종주의자이기도 하다. 인종차별은 그의 DNA에 박힌 어쩔 수 없는 색인이다. 부라린 눈은 고집불통의 성격을 드러내고, 심통이 얼굴 가득 빡빡하다. 척 보면, 누구나 알법할 정도니. 어찌 그의 아내가 버티고 살았을까 싶은, 그런 얼굴. 물론, 첫 눈에 박힌 선입견이겠지만. 그런 한편, 한 꺼풀 벗겨보면, 그는 은근 로맨티스트다. 아내를 위해 내키지도 않는 교회를 다녔고, 여전히 아내의 빈자리가 애틋하다. 자칭, 별 볼일 없는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은 아내와의 결혼이란다. 허허. 이 영감탱이. 지고지순 사랑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뼛속 깊은 사랑 보수주의자다. 


<그랜 토리노>는 그런 아내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의 미스터 코왈스키는 슬픔보다 되레 분노한 표정이다. 장례식부터 하객까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 거린다. 아마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남자를 먼저 보낸 여자는 오래 버텨도, 여자를 먼저 떠나보낸 남자는 그렇지 않다. 즉, 나이 들수록 여자는 강해진다. 반면 ‘수컷’은 약해 빠진다. 그것이 수컷의 실상일지도 모른다. 괜히 강한 척 가오를 잡아보지만, 그 역시 늙고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수주의자의 가치 지키기


아내의 장례식이 끝난 미스터 코왈스키의 시골 마을. 옆집에 ‘몽족’계통의 베트남인들이 이사를 온다. 그 쪽 할머니는 연신 자신을 향해 궁시렁거리고, 한 눈에 봐도 그들이 싫다. 아시아계가 동네를 장악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개탄스럽다. 아들의 일본차만 봐도 열불 뻗치고. 한국이 어딘지, 어느 나라인지 모르는 꼬맹이들과 달리, 그는 내면부터 주변부까지 온통 아시아가 퍼져 있다. 그에겐, 그것이 끔찍하다. 그런데 그것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전쟁에서의 끔찍한 기억. 훈장 따위로는 씻을 수 없는 피의 업보.


자연히 옆집 사람들과의 접촉, 꺼린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엮인다. 어쩌겠는가. 온통 주변부를 둘러싸고 있는데. 사촌이 소속된 아시아계 갱단은 옆집의 심약한 소년, 타오을 충동질해 그의 애마, 그랜 토리노를 훔치도록 사주한다. 거사(?)는 실패하고, 차량절도미수범과 늙은 홀아비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여기에 가세하는 것이 소년의 누나, 수. 딱딱 부러지는 반면 애살도 넘치는 영민한 낭자다. 동생과 달리 사교성 철철이다. 고약한 고집불통 늙은이를 다루는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 인종 뿐 아니라, 세대와 문화까지. 철저히 그들은 다르다. 다만 계급적으로는 절충이 가능할까, 타진하는 정도? 그러나 희한하게 그들은 화학적으로 결합한다. 무척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보수주의자의 타협이냐고? 아니. 도리도리. 네버. 노.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보수주의자가 철저히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과정이었다. 스펙트럼을 넓혔을망정, 그는 자신의 가치를 놓거나 바꾸지 않았다.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사건을 통해, 그들은 ‘유사가족’처럼 지낸다. 영감탱이가 외로웠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가족’에 대한 미스터 코왈스키의 죄의식이 씻김굿을 행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극 중 잠시 토로한다. 두 아들과 애틋하게 지내지 못한데 대한 저 깊은 곳의 회한을.



혈육인 두 아들은 이미 멀어졌고, 손자손녀들까지 그를 멀리한다. 그에게도 상처였으리라. 알면서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상황. 아내까지 떠난 마당. 말했다시피, 그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을 지키고 싶은 보수주의자다. 그런 그에게 피붙이는 아니지만, 살가운 이웃이 생겼다. 유사가족이 됐다. 죄의식을 품고 사는 그에게 이것은 기회다. 그는 정말로 헌신한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스스로 가족을 지킨다. 나는 짧은 단발마의 탄성을 내질렀다. 앞서, 그가 말했던 어떤 것이 저렇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구나. 아하. 


그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서 행동한다. 행동하는 보수주의자다. 나는 그가 인종주의자의 굴레를 벗었다고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는 그저, 가족으로 그들을 포섭했을 뿐, 그의 DNA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사람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는 건, 맞지 않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사람은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들을 선택하게 된다. 그의 선택은 인종주의자의 탈을 벗어던지기보다, 가족이라는 가치에 집중한 듯 했다. 그는 가족의 외연을 넓히는 변화를 겪었을 뿐이다. 그렇듯,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의 보수는, 선량하고 약한 자들을 지키는 참된 보수다. 무력과 폭력 혹은 권력, 즉 힘의 우위로 약자를 괴롭히는 꼴을 못 보는 것이 미스터 코왈스키다. 그것이 또한 영화를 통해 보아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그는 당연하게도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힘을 보탰다. 그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 이 땅에서 보수라고 빡빡 우기면서 뻗대는 작자들, 명함도 내밀어선 안 된다. 그건 ‘진짜 보수’에 대한 모욕이다. 그 수구꼴통들의 짓거리를 보자면,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고. 에휴~

 


자경단원 이스트우드의 속죄 혹은 속풀이


미스터 코왈스키가 ‘가족’을 위해 취한 행동은, 또 다른 함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씻김굿’이었다. 극중 인물과 함께 실제 자신의 지배적 이미지를 향한 것이었다. 우선 영화 속의 그에겐 어떤 죄의식 혹은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전에서 행한 살육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참회하지 못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는 그것을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빨을 가는 것, 침을 뱉는 것, 어떤 작은 동작을 통해서, 그는 코왈스키를 내면화하고 있는 듯하다. 밖으로 표출된 그 행동의 이면에 자신을 향한 분노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늘 총부리를 끼고 산다. 한국전에 대한 씻지 못한 상흔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건 좀 묘하다. 현실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지배하는 젊은 시절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그는 늘 자경단이었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자경단원. 그러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었다. 이스트우드를 본격적으로 알린, 법보다 총이 앞선 <더티 해리>의 칼라한 형사. 웨스턴 장르의 서부영웅처럼 그는 스스로 악을 소탕하고자 나선 정의의 사도였다. 총은 그런 그에게 분신이었다. 심심하면 총을 들고 총부리를 겨누는 이 노인네에게서 그의 옛날 옛적을 꺼내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어느덧 ‘늙은’ 그는 고작(!) 동네 꼬맹이 갱들 때문에 총을 든다. 선량한 이를 괴롭히는 나쁜 놈들을 소탕하는 것 또한 자경단의 몫이겠으나, 거대하고 센 적들에 맞서왔던 이스트우드의 이력을 떠올린다면, 이건 좀 아니잖아~ 그래, 늙어서 어쩔 수 없구나. 칼라한의 노년도. 꼬질꼬질한 고집불통이 돼서 가끔 피를 토하는 늙은 자경단원이라니. ‘비열한 거리’에 놓인 건 마찬가지지만, 화력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럼에도, 미스터 코왈스키의 총은 화끈하게 불을 뿜지 않는다. 칼라한처럼 무데뽀로 총알을 내뱉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확인할 일이지만,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타오에게 건네던 이 말. “난 이미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난 이미 더렵혀졌으니까. 그래서 혼자 가야한다.” 그리고 뚜벅뚜벅 갱들이 있는 아지트로 혼자서 떠난다. 이에 앞서 50년 동안 모아온 엄청나게 많은 공구가짓수에 놀란 타오에게 그는, 말한다. “각자 다 역할이 있다.” 맞다. 그건 늙은 자신도 어떤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 속이지만 그는 과거, ‘살인 기계’였다. 총과 피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여러 개의 함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 미스터 코왈스키의 한국전에 대한 참회가 우선이라면, 과거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자경단원 심볼에 대해서도 스스로 단죄를 내리는 행위다. 자경단원으로 이름을 알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심볼과 이별을 고하는 순간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스터 코왈스키는 칼라한 형사의 노년이다. 참고하자면, <수색자>에서 이산 에드워드(존 웨인)가 홀로 문밖에서 황야로 멀어져 가는 장면이 있었다. 서부사나이의 죽음을 표현했던 장면이다. 이것은 의미심장했다. 존 웨인의 역사가 끝나고, 그로 인해 웨스턴의 역사가 접히는 순간이었다. 비록 이를 체감하지 못한 관객을 위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다시 한번 이를 확인했지만 말이다.



영화 속 인물은 물론, 현실에서의 그가 지녔던 심볼을 상기시키는 이 함의는 놀라운 것이다. 고해성사가 있었고, 속죄와 참회의 순간이 이어졌다. 어쩌면 이스트우드는 마음 속에 응어리졌던 무언가를 속풀이한 것은 아닐까. 더욱이 이 영화가 80살 먹은 노인네, 이스트우드의 배우 은퇴작, 마지막 연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연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내 나이대의 이야기였고, 내게 딱 맞는 역할이라고 느껴졌다.” 그래, 딱이다. 딱. 그래서 이 영화를 놓친다면, 특히 스크린을 통해 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올해 중요한 일을 하나 놓친 것이 될 것이라고 감히 나는 건네고 싶다.


좀더 나아간다면, 영화에는 수를 통해 몽족과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미스터 코왈스키가 수와 타오를 지키고자 하는 것 또한, 베트남전에 대한 속죄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국 정부를 대신해 건네는 사과.


나는 감사했다. ‘월트’(앞서 계속 미스터 코왈스키라고 언급하다가 갑자기 월트라고 지칭하는 건, 영화를 보시라!)에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사유할 수 있는 행복한 영화보기를 하게 해줘서. 물론, 머리 빈(MB) 작자는 아무리 봐도 도통 뭔 얘기인지, 알 수 없겠지. 아마 아시아계 갱들은 모조리 없애야한다고 생각할 걸. 아니면, 이건 얼마 투자해서 얼마 벌었냐 따위를 ‘역시’ 묻겠지. <그랜 토리노>도 적은 돈 들여서 1억달러(약 15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영화거든.


하긴 지금의 경제공황에 대해 ‘워낙쏘리’해야 할 양반도 ‘보수주의자’이긴 하다. 보충하고 수리해야 하는 그 보수(補修)말이다. 온통 보수해야할 것투성이니 보수주의자지 뭐. 바라건대, 머리 빈(MB) 사람은 우선 ‘사팔뜨기(SD, 상득)부터 ‘보수’ 좀 하시고, ‘미래사년 고난’이라는 우리네 삶도 제발 ‘보수’ 좀 해주라. 당신 때문에 잃어버린 ‘민주주의’도 보수해주고. 에휴, 이것저것 따지자니, 너무 많네. 전면 보수해도 안 될 것 같은데, 아싸리 교체하면 안 될까?



월트(클린트) 할아버지, 어떡하죠? 총 들고 와 주세요. 한국전 참회하는 김에, 여기 정리 좀 안 될까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BLOG main image
버려질 수 없는, 버려져선 안되는 생의 사랑 by 필감준수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11)
My Own Coffeestory (44)
메종드 쭌 (191)
러브레터 for U (20)
온통 어리석음의 기록 (38)
할말있 수다~ (14)
캘리쭌 다이어리 (3)
"Just a word with you" (0)

글 보관함

달력

«   2009/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 395,495
Today : 5 Yesterday :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