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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뭐랄까.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 순간의 거짓 진술. 그것이 불러올 엄청난 후폭풍을 보고선. 물론, 그것은 13살의 소녀가 감안할 수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을거야. 최초의 상처에 대한 앙갚음이었는지, 언니를 향한 질투였는지, 아니면 하찮게 여긴 장난이었는지, 그저 무언가가 눈을 뒤집어씌웠는지, 알 수는 없지만. 더구나 신분의 차가 여전히 사람을 주무르는 시대였잖아. 그녀는 주인집 딸이었고. 하인집 아들 하나 죄 하나쯤 뒤집어씌우는 거야 뭐 대단하게 생각했겠어. 물론, 그녀는 단지, 열.세.살. 이었어.

진짜, 끔찍한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야. 그런 말 있잖아. 살아도 사는게 아닌 거, 웃어도 웃는게 아닌 거, 뭐 그런 것. 그러니까, 생이 어떤 죽음 속에서 사는 것, 그보다 끔찍하게 옭아매는 것도 많진 않을거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생의 어떤 수수께끼. 브라이오니(시얼샤 노난)가 생의 절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속죄(어톤먼트, atonement)'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 찰나. 브라이오니의 생은 아마 그 찰나를 기점으로, 'before'와 'after'가 나뉠거야. 13살 이후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순간부터, 평생을 죄책감과 가책에 시달려야 했던 운명. 자신의 죄에 대해 마땅히 받아야 할 독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가엽단 생각, 그리고 어떤 잘못이 잠식한 영혼이 안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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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었던 거지. "우리, 다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아니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외치던,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를. 또한 자기도 그 속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겠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었지만, 전쟁까지 터지면서 더 뒤죽박죽 돼 버리잖아. 자기 손을 떠나버린,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받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 돼 버렸으니, 그 애타는 마음이야 오죽했겠어.

그렇다고, 13살 소녀의 거짓 진술 하나에 사랑이 엇갈린, 그리고 죽는 그날까지 서로를 죽도록 그리워 한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이 바래는 것도 아냐. 사랑을 확인했던 그 순간, 타인에 의해, 외부변수에 의해 단절된 사랑. 어휴,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어. 가장 아쉬울 때, 절정으로 치닫기 전에 서로 만날 수 없게 되는 걸 상상해 봐. 그 애타는 마음을, 어찌 다.

그래서, 끝나고서도 왱왱 울렸어. "Come back... come back to me..."라고 애잔하게, 구슬프게, 갈망하던 그 목소리가. 어떻게서든 전장에서 살아나, 세실리아에게 돌아가겠다는 로비의 그 눈빛과 다짐. "...find you, love you, marry you, and live without shame..."  시간을 되돌리기를, 이야기를 되돌리기를, 원한 것은 그래서, 브라이오니만은 아니야. 그들 모두가 다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지. 그 찰나의 진술 하나가 뒤집어놓은 이 모든 운명 같은 지옥에서 말이야. 기다림이 깊어지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깊어지면 슬픔이 된다는 말. 나는 그들을 통해 그 슬픔을 엿본 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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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효과처럼 기능하던 타이프라이터는 과연, 브라이오니의 속죄를 가능하게 해 줬을까. 글쎄, 예술이 현실에 대해 뒤늦게 할 수 있는 일을 다뤘지만, 결국 그것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 허구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어. 어쩌면 자신의 첫 소설이라고 말하는, 치매 돌입기의 브라이오니의 말은, 그 한계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보고나서, 이 영화, <어톤먼트>는 혼자 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같이 본 친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온전하게, 이 모든 감정과 맞닥뜨리려면 혼자가 더 좋은 영화였어. 뭐,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다시 꺼내는 것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것과 같다고 여기지만, 그 '돌이킬 수 없음'의 기저에 있었던 치명적인 잘못을 속죄받기 위한 회한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나는 그렇게, 당신이 아프고 아팠어.
누구에게나,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속죄할 것이, 회한으로 가득찬 것이 있기 마련이지 않을까.
나는 그 약속이, 결국은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이, 아팠던 거야.

한편, 브라이오니의 오뉴월 서리를 생각하자니, 떠오르는 이 말.
열 세살이라고 무턱대고 무시하지 말길.
당신을 시험하기 위해 물에 빠진다고 할 때, 반드시 말리거나, 구해준 뒤 가시 돋힌 말을 내뱉지 말 것.
그리하여,  
"풋사랑이라고 웃어넘기지 말 것. 최초의 상처가 가장 깊으니까." (≪필름 속을 걷다≫(이동진 지음))

참,
키이라 나이틀리는, 여지껏 내가 본 그녀의 영화 중 가장 여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면서 나를 댕겼고,
제임스 맥어보이는 마음을 뒤흔드는 파란색 눈빛이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더라. 멋진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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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nement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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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수 없는, 버려져선 안되는 생의 사랑 by 필감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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