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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7 10:14 메종드 쭌/무비일락
그제, 뉴욕에 사는 친구와 전화를 했다. 녀석은 늘 그랬듯, 바빴다며 투덜댔다. 우린 웃기게도 서로를 부러워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서로의 공간을. 나는 뉴욕을, 녀석은 한국을. 녀석은 이른바 '뉴욕 촌놈'이다. 뉴욕에 있을뿐, 그 속살을 모른다. 일에 치여사는 직딩의 모습이 그러하듯. 그러면서 우리는, 1년 전을 꺼냈다. 1년 전 우리는 뉴욕을 함께 누볐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는 녀석 덕분에 뉴욕의 '사백팔분의 일'을 맛봤다. 녀석도 마찬가지. 나 덕분에 뉴욕을 돌아다닐 수 있는 핑계를 찾은 셈이었다. 그때 내 손엔 <<안녕 뉴욕>>(백은하 지음)이 있었다. <<안녕 뉴욕>>은 영화 속 뉴욕을 거니는 책이다. 우린 그 책을 일부 따랐다. <세렌디피티> <인더컴퍼니> <섹스앤더시티> 등의 동선을 따라, 센트럴 파크의 스케이트장에서 백만년만에 스케이트를 탔고, NYU 앞의 커피숍(레지오) 등에서 커피향에 취했다. 가장 아쉬운 건, <이터널 션사인>의 '몬탁'을 가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징징거렸다. 뉴욕을 다시 거닐고 싶다고. 더 정확하게는 영화 속 뉴욕을 맛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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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은 봄날의 늦은 오후, 몬탁의 해변을 거닐었다. 바다는 좀더 넓었고, 모래사장은 좀더 작았다,고 했다. 그 바닷가, 쓸쓸했나보다. 이동진은 몬탁의 풍경을 그리 상세히 서술하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바닷가는 그래야 어울린다. 이동진은 그리고, 기억과 사랑을 끄집어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부조리로 가득한 세계에서 결함투성이인 삶이 누릴 수 있는 게 실수투성이 사랑이라면, 그 보잘 것없는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맞다. 이동진은 그 사랑을, 긍정하고 있다. 기억은 지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은 기억하고, 몸은 끝끝내 그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동진은 또 말한다. "실수투성이 사랑에 그저 하나를 더 바란다면, 길고 긴 그 사랑의 종착점이 어디든, 마지막 순간에 손을 흔들어 답례할 수 있기를. 기쁨이었든 고통이었든, 함께 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음을 미소로 확인해 줄 수 있기를."

나는,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기억한다. 'Delete'를 누른다고 지워질 수 있는게, 내 사랑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지우개로 지워도, 꾹꾹 눌러쓴 흔적은 남는 법. 사랑은, 늘 꾹꾹 눌러쓰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내 사랑에게, 가끔 속삭인다. 마음 속으로. 고마웠다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줘서, 너의 곁에 잠시 살아서, 그때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줘서... '잊는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안에서 방을 전세냈던 그 사람들을. 방을 뺀다고 그 흔적을 말끔히 지울 수가 있나. 다른 방이 생기면서 축소되고 희석될망정, 그 기억은 어느순간 불현듯 냄새를 피우곤 한다.

이동진은 내게, 이 말을 건넸다. "시간을 견뎌낸 모든 것들에 갈채를." 그건 <이터널 션사인>의 몬탁을 기행하고 썼던 말이다. 예전부터 나는, 이 말을 좋아했다. 시간을 견뎌내고, 살아있는 모든 것에 나는, 감탄하고 있었다. 물론 노욕과 노회함으로 점철된 모리배들의 것과는 다른. 이동진은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을까. 나는 버티고 견디려고 발버둥친다. 이 세계를, 이 일상을.

그래서, 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좋아한다. 이동진은 겨울에 치바를 찾았다(같은 바다지만, <이터널 션사인>의 몬탁은 봄이었다). 겨울바다는 역시나 외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겨울바다에 간 이동진에게서,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어떤 외로움. 외로움도 크기가 없다.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엔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죽음이 그렇고, 외로움이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외로움의 잔을 마땅히 들이켜야 한다. 1인분을 지탱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조제와 츠네오가 이별여행을 했던, 일본 치바현 규주큐리 해변을 거닌 이동진은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무거워도, 부디 1인분의 삶을 흘리지 않을 수 있길. 함께 가는 이가 흘린 삶은 또다른 항해자에게 암초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이동진은 이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글 속에서 이동진은 그렇게, 1인분의 술잔만 말없이 비웠다고 했다. 현실에 딱 밀착된 생을 표현한다면 저보다 좋은 표현은 없을 것 같았다. '1인분'.

나는 이동진을, '평론가'라기보단 '감식자'라고 부르고 싶다. 이동진의 (영화)언어는, 대개의 평론가의 것과 다르다. 내 인상비평이지만. 물론, 평론가라고 다 똑같진 않다. 영화평이나 기행문에서, 이동진은 오버하는 감이 없다. 덤덤한 게 좋지 아니한가? "내 감정에 책임을 지자"는 영화평 작성의 원칙도 얘기했지만, 이동진은 영화 속에서 생의 어떤 부분을 길어내는 것 같다. '벅찬 느낌'에서 비롯되는 리뷰의 시작, 역시 다르지 않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감정에 논리적 근거를 들이대야하는 결벽증(?)도 한몫하겠지.

<<필름 속을 걷다>>에서, 나는 외로움을 봤다. 단지, 혼자 그곳을 거닐어서가 아니다. 그 속에는 1인분의 생을 견뎌내야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아픔이 있었다. 흔적을, 리얼리티를, 시간을 찾아 흘러갔던 이동진은, 어쩌면 극악하게 시니컬한 사람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누군가는, 이동진의 글이 따뜻해서, 감성적이어서, 좋다고 했지만, 나의 느낌은 아니었다. 이동진은, 이동진의 글은, 애를 쓰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밥벌이 혹은 생의 공포와 끊임없이 싸우듯이.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동진이 말했듯, 여행이라는 아픈 상태에서, 자신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훑은 기행문이었기에. 여행에 대한 판타지를 제거한, 각기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긍정한. 물론,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괜스리 오버하는 여행기도 때론 좋다. 그것이 내게 삘을 꽂았을 경우겠지만.  

간접적으로 '필름 속을 걸'으면서, 홀로 걸었던 사람(이동진)의 길을 떠올렸다. <러브 액추얼리>의 런던, 모두가 쉬는 성탄절, 근위대 병사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속삭임을 들었다는 말에, 나는 부르르 떨었다. 내가 꼭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그런 기분. 이동진은 말했다. "떠들썩한 축일을 홀로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은밀한 동료애 같은 것이 우리 사이에 잠시 흘렀다." 나는 잠시, 그 이방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동진은 또 말했다. "사랑을 이야기하면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이 모든 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어디에서든 사랑을 애타게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 또한 종종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 나는, <사랑해, 파리>의 백혈병 부인을 둔 중년 남자가 떠올랐다.

나 역시, 필름 속을 계속 거닐고 싶다. 그런데 필름은 쌓이는데, 언제쯤 그 속을 거닐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온 15개의 영화 가운데, 나는 이동진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라는 <행잉록의 소풍>, <나니아 연대기>, <티벳에서의 7년>, <베니스에서 죽다>를 보지 못했다. 뭐, 영화를 보지 못해도 좋은데, 어쩐지 이들의 공간에는 한번쯤 발을 디디고 싶다. 그곳에서, 1인분을 말끔히 비우고 싶다. 다시 뉴욕도 가보고 싶다. 그 속의 필름들을 찾아. 아울러, <러브레터>의 오타루는 꼭 가야겠다.

"시간을 견뎌낸 모든 것들에 갈채를" 보내고 싶은 당신이라면,
나는, 이 책을 권한다.

☞ 영화 읽어주는 남자 이동진을 만나다 (예스24 채널예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