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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9 23:28 러브레터 for U

 

신문을 펴면, 빠지지 않고 반드시 보는 코너가 있다. 부고란이다.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을 본다. 그 이름에 얽힌 사람들도 자연히 보게 된다. 사라진 한 우주와 그 우주를 둘러싼 세계를 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아주 잠시 상념에 빠진다. 물론 세상엔 신문 부고란에 나오지 않는 죽음이 더 많다. 그 사실도 철저하게 잊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죽음은 허투루 다뤄서는 안 된다. 죽음에 대해 성숙하지 태도를 지닌 사회야말로 천박한 사회다. 그렇게 보면 한국 사회가 죽음을 다루는 태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 오비추어리(Obituary, 부고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부고란을 맡고 부고 기사를 쓰는 담당 기자는 대부분 신입이나 경력이 얕다. 부고 기사를 한국 미디어들이 얼마나 소홀하게 다루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쩔 수 없다. 해외의 예를 들어야 겠다. 해외 유력 언론에게 오비추어리는 중요하다. 사내 최고의 기자들이 부도 담당을 한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오비추어리는 유명하다. 부고 기사만 모아 책으로 발간할 정도다. <이코노미스트>는 마지막 페이지를 한 사람의 부고 기사에 모두 할애한다.
 
부고 담당 기자는 그래서 엄청난 자료를 갖고 있고,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다루기 위해 다양한 취재원과 접촉한다. 한 우주의 소멸을 다루는데, 예의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요, 다양하고 입체적인 정보를 담아야 하는 것은 필수다. 오비추어리는 죽음을 다루지만 결국 독자들에게 지금의 ‘삶’을 돌아볼 것을 권하는 기사인 것이다. 스티븐 킹은 그래서 부고 기사를 커튼콜에 비유했다. 이런 말까지 덧붙여. “때론 쇼의 최고 장면은 커튼콜이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나는 이 작품을 오비추어리로 읽었다. ‘잭 캘로웨이’라는 생소한 작가를 기록한 뭉클한 오비추어리.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한 만화가를 좇는 세스의 여정은 특별한 것이 없다. (자료를) 찾고, (캘로웨이의 흔적을) 찾아가고, 이를 친구와 나눈다. 대단한 작가도 아닌 캘로웨이를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찾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도, 이 작품,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림은 더디게 흘러가고, 빠른 장면 전환도 없다. 천천히 묵묵하게 간다. 여느 만화의 속도와는 다르다. 영화의 ‘롱테이크(길게 찍기)’와도 같다.

 

그림은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그리고 정교하다. 한 장면이라도 허투루 그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연출 같다. 한 컷 한 컷에 뭔가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한 컷 한 컷도 그래서 주인공이다. 만화로 세상을 배운 세스를 통해 드러난 ‘만화경’도 하나의 사소한 재미다. 덕분에 만화에 대한 메타만화로서도 기능한다.
 
세스의 캘로웨이 찾기는 인간이 지닌 어떤 한 본성을 엿보는 것 같다. 사실 캘로웨이를 찾는 일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그 이유의 불분명함 때문에 이 만화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세스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지 의아할 때가 있다.
 
“캘로를 찾아헤매는 것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가 대체 뭐라고… 그냥 반짝 뜨다 만 사람을 가지고. 더 중요한 작품을 남긴 사람을 찾아봤어야지. 그게 더 현명한 일이었을 텐데.”(p.125)
 
그럼에도 인간은 어떤 이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끌림에 따른다. 자료를 찾고,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전화번호부를 통해 집 주소를 찾아낼 정도의 열성이다. 세스가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일까. 세스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나도 궁금했다. 돈 되는 일도 아니요, 그의 작품과 흔적을 찾는다고 세상이 떠들썩할 것 같지도 않다. 그는 그저 발을 떼고 찾을 뿐이다.
 
“인생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연속이 아니야.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이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방향으로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끌려다니는 거야.”(p.155)
 
어쩌면 캘로웨이는 세스에게 ‘좋은 것’의 대명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쇠락해가는 옛 것들을 보며 사라져가는 과거를 슬퍼하’는 세스다. ‘옛날 삶이 더 단순했고,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쉬웠다고 생각하’는 세스다. ‘좋은 건 절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세스다. 그 시절의 좋은 것들이 자신의 삶에 계속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로선, 캘로웨이의 작품을 찾는 것이 자신의 삶의 돌파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과거 속에 가라앉아 허우적대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나간 시절을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뭔가 실마리를 찾아내면 현재의 지긋지긋한 문제들도 해결될 것 같다. 5분만 놔둬도 곧바로 우울해지는 게 나란 사람이다. 세상만사 슬프지 않은 게 없다. 안다. 내가 유난 떤다는 것. 하지만 많은 게 날 우울하게 만든다. 여기 이 기름때 낀 숟가락만 해도 그렇다.”(p.41)
 
그가 캐나다를 오가면서 찾은 캘로웨이의 이야기도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특별한 순간이다. 생의 모든 순간을 기적이라 칭할 순 없지만, 가슴이 뛰는 찰나의 순간을 기적이라 칭하지 말란 법도 없다. 캘로웨이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세스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는 가슴이 살짝 뛰었다. 세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특별할 것도 없는 그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질 어느 순간을 감식한 세스는 아마 행복했던 것 같다. 미처 몰랐던 아들의 야한 만화를 보면서 재밌어하는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한다. 아들의 몰랐던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어머니의 모습을 향해 세스는 웃고 있다.
 
그는 한 뼘 성장했을 것이다. 물론 성장이 아니어도 좋다. 성장은 한 순간에 훌쩍 크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이 모인 결정체다. 인생은 그러니까,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IT‘S A GOOD LIFE, IF YOU DON’T WEAKEN.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제목이다. 누구에게나 약해지려는 순간, 느닷없이 닥친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순간은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약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조금 비참한 게 영혼에는 좋아요”라는 캘로웨이의 말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또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캘로웨이의 말은 불행하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말없이 수긍하며 사는 삶에 만족했던 캘로웨이의 미소를 상상해볼 수 있다. 나도 세스가 말했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 바이올렛이 고마웠다. 이 책의 제목이자, 세스에게 종종 해주시던 말씀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삶을 버티는데 도움이 된다. 이 책, 로고테라피(의미치유)의 기능도 한다. 이런 오비추어리, 긴 여운을 남긴다. 하늘에 있을 캘로웨이도 참 좋아하지 않았을까!
 
아 참, 세스 옆에서 그저 묵묵히 받아주는, 체트의 존재도 은근히 인상 깊다. 그는 친구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고, 자기비하를 일삼는 친구에게 넌지시 “넌 괜찮은 놈이야”라고 건네준다. 친구의 만화 열광을 묵묵히 들어주다가 “그러게… 느낌이 좋다”고 말해주며, 어쩌면 그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캘로웨이 찾기’에 나선 친구를 응원해 준다. 좋은 친구의 좋은 예다. 체트 같은 친구,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도 생각이지만, 내 스스로가 누군가의 그런 친구이고 싶다. 많은 사람이 아닌 오롯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존엄을 지닌 당신에게만.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