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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1 01:43 메종드 쭌/무비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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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는,

'최고'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독보적이라고 난 생각해(물론 누군가에겐, 분명 '최고'였을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AIDS로 세상을 떠났지. 공식발표가 그랬어. 지난달 24일은 그가 떠난지 16주기였어. 1991년 11월24일. 팬들은, 음악계는, 충격을 받았고, 오열했었지. 알려졌다시피, 프레디 머큐리는 동성애자였잖아. 불후의 히트곡, 'We Are the Champions'는 비공식적으로 '동성애 자유 운동'의 찬가였으며, 머큐리는 동성애자 사회에서 우상처럼 받들여졌다더군.

그러나, 그 당시에도 에이즈에 대한 편견은 공고했다규.
'동성애자=에이즈 전파자' '잘못된 성적 정체성(동성애)의 선택에 따른 천형'과 같은 인식이 만연해 있었다구.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은, 어찌할 도리 없이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공포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었지. '거봐라, 동성애자면 저렇게 된다'는, 꼴통 이성애자들의 기고만장. 질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결국 편견을 낳거나 강화시키지. 에이즈의 원인을 찾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한 채,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이 퍼뜨린 질병처럼 인식됐어. 내 어린 기억에도, 동성애는 질병과도 같은 수준으로 죄악시됐고. 그것은 에이즈의 책임을 동성애자에게 돌리는, 얼척없는 사회적인 살인이나 다름없었지. 한마디로 에이즈는 이데올로기였다규. 나쁜 사회, 나쁜 편견.

그로부터 2년 뒤, 한편의 영화가 나왔지.
<필라델피아>. 톰 행크스를 연기파 배우로 업데이트 시켰고, 에이즈와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뤄서 널리 알려졌잖아. <필라델피아>는 사실, 할리우드 '주류' 영화계가 에이즈를 처음 다룬 영화야(1990년에 <오랜 동료>라는 에이즈를 소재로 한 영화가 처음 등장한 사실은 있고). 미국에서도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만연하던 그 시기, <필라델피아>는 한편의 영화가 어떻게, 강고한 사회적 편견에 금을 가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겠군.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톰 행크스는,
"우리는 너무 늦었다"고 토로했어. <필라델피아>는 그래도, 편견과 차별에 대한 투쟁과 쟁취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지. 내게도 <필라델피아>는, '에이즈는 현대의 흑사병'이라는 인식에서 꺼내준 고마운 작품이었어. 또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며, 편견으로 누군가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영화. 감동도 감동이었지만, 나는 그런 깨달음을 준 것에 고마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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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 기억하지?
유능하고 로펌에서도 가장 촉망받던 앤드류(톰 행크스)가, 갑자기 해고를 당하지. 알고보니, 이런, 에이즈 때문이었어. 로펌에서 에이즈에 걸린 앤드류를 해고하기 위해 일을 꾸민거지.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생각한 앤드류가 라이벌 변호사였던 조(댄젤 워싱턴)을 찾아가 복직을 위한 변호를 부탁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끓어오르지. 그러나, 사실 조도 처음엔 앤드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에이즈 때문에. 그러다 앤드류의 신념에 감화되고 교감을 나눈 조가, 해고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에이즈 때문이며, 이는 차별이고 위법임을 입증하는 드라마. 익숙한 정의구현의 이야기지만, 영화가 다룬 것은 당시로선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지. 그리고 매끄럽게 잘 풀어나갔고.

우리는, 또한 영화에서 우리 자신을 보기도 했지.
앤드류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면서 도서관에 있는데, 도서관 사서는 그에게 작은 방으로 갈 것을 요구하잖아. 앤드류는 거부 의사를 밝히며, 묻지. "나는 괜찮은데, 당신은 불편한가요?" 그 사서의 모습이 평범한 우리네 모습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불편해하며, 일상에서 차별을 자행하는. 뜨금했던게지.

그리고, 그 차별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필라델피아'야.
필라델피아라는 도시가 지닌 기호가 또한 상징적이지. 알다시피,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초대 수도. 미국 독립의 상징인 '자유의 종'도 있지. 특히, 그리스어로 '형제애'를 뜻하는 어원을 보자면, 필라델피아는 '사랑과 평등, 인권의 도시'인 셈이잖아. 워싱턴이 행정적인 수도이며, 뉴욕이 경제적인 수도라면,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수도. 그렇지만 영화는 아이러니하게, 그런 필라델피아에서 자행되는 부당함과 인권침해가 존재하지. 누군가 그리말했듯, 감독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자유와 인권은 없음을 말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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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 속, 두 개의 음악이 가진 '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 부른 '필라델피아 거리(The Street of Philadelphia)'. 우수에 젖은 브루스의 음색은, 도시와 풍경과 맞물려 필라델리아의 형제애를 부각시키더군. "...밤이 다가왔지만 난 뜬눈으로 누워서 내가 서서히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어. 그러니 그대의 무정한 키스로 날 받아 줘, 형제여. 아니면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홀로 남겨둔 채 떠날 거야, 이 필라델피아의 거리에서..."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마지막 증인 심문을 앞두고 조는, 링거를 꽂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앤드류를 찾지. 앤드류는 오디오 볼륨을 높일 때 나오는, 이 아리아. 앤드류는 삶과 죽음에 대해 절규하듯 토로하고, 자신의 존재를 '사랑'이라 명명하는 잊을 수 없는 장면. 이 아리아는 두 사람의 교감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한편, 나 역시 눈물로 빨려들더군.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더라. 이 짧은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아마, 에이즈에 대한, 혹은 정치적 태도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지 않았나싶어. 물론, 이것이 동성애자의 섹슈얼리티에까지 관심을 두도록 유도하진 못하지만 말이야. ☞ 9.16 마리아 칼라스 30주기 : 죽어서도 '악녀'인 그 목소리

그래, 오늘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야.
감염인 단체, 인권시민단체 등은 감염인들이 주체가 되고 연대를 꾀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감염인 인권의 날'로 고쳐 부르고 있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고립감은, 신체적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라고 생각해.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향한 악행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초래할 사회적 비용의 상승은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어. 그들 역시, 이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인 걸. 나는, 뒷구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가와 국민을 관리하려 들면서, 한편으론 얼토당토않게 '또 하나의 가족'을 부르짖는 그 쉐이들을 '차별'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들과 '가족'이기 정말 싫거든. 그들과 맞잡은 손을 떼고, 차라리 감염인들의 손을 잡아줘야하지 않겠어.

우리 안의 '필라델피아'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벌써 십수년이 흐른 영화, <필라델피아>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줬지. 그리고, 지난해 EBS에서 감염인 편견해소를 위해 <길 위에서>라는 드라마를 방영했고, 올 봄엔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봄이'를 통해 우리네 마음의 편견에 일침을 놔줬지. 착한 그 미디어들,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직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잖아. 그래도 멈출 수는 없겠지. 제2, 제3의 <필라델피아> <길 위에서> <고맙습니다>가 나와줘야 하고, 그런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변해가겠지. 그러다보면, 악의 평범함도 희석되지 않을까.
☞ AIDS의 날을 맞아 다시보는 드라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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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