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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었던 소녀는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됐나!

『그림처럼 사는』『삶처럼 그린』 김지희


지난 6월30일, 서울 마포구 북카페 <공감의 기쁨>, ‘눈물과 미소의 화가 김지희 저자강연회’가 열렸다. 출판사 사옥이면서 북카페를 겸하고 있는 공간, 저자와 독자들 오붓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김지희,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녀


김지희 작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내성적이었고, 말도 없는 소녀였다. 초등학교 때는 워낙 말이 없어서 주변에선 그를 벙어리로 오해하기도 했다. 부모는 맞벌이를 했고, 혼자 있는 시간, 책을 읽고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다. 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미술관을 많이 다녔다. 대가의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신기했다. 죽은 지 오래됐는데, 사람들이 몰리고 그림이 뿜어 나오는 아우라에 압도됐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을 봤다.

 

강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나도 이런 화가의 길을 가고 싶다! 화가는 죽고 나서도 가치를 남기는 위대한 직업처럼 느껴졌다. 모네 그림에 영혼이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눴다.

 

막연하게 화가의 길이 어렵다는 것은 알았다. 먹고 살기 힘들고 가난하다는 이유.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정말 화가가 되고 싶은가를 물었다. 마음이 답했다. 힘들고 외롭고 쉽지 않아도 작가의 길을 가고 싶다.


“부모님께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깜짝 놀라시면서 당장 미술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그게 1년 넘어 길어지면서 미술을 못하게 될 수 있겠다는 불안이 들었다. 예고를 가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를 수원에서 다녔는데, 주변에 변변한 미술학원이 없었고, 주변에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학원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시험이 4주 남았는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어머니를 설득했지만 실망을 많이 하셨다. 계속 하고 싶다고 하니까 결국 승낙하셨지만, 네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책임 안 진다고 하셨다.”


소녀 김지희, 이를 악물었다. 이것조차 못 넘으면 안 될 것 같았다. 4주 밖에 안 남았지만, 매일 새벽까지 열심히 그렸고, 마침내 붙었다. 그러나 부모님한테 칭찬도 못 받고 외로웠다. 자신이 선택한 길, 스스로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양화를 선택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서 시선도 많이 받고 소질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동양화를 선택했다. 생전 처음, 천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 그림이 안 그려졌다. 선생으로부터,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예고를 왔니?’라는 호된 비난도 받았다. 상처였다. 슬럼프를 탈피하고자 했지만 별달리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학교에 가서 국화만 주야장천 그렸다. 다음날 새벽까지. 월요일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마침내, 슬럼프를 탈출하는 순간.


“그 경험이 소중했다. 100장의 그림 중에 99장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100장 째에서 뭔가 탁 풀리는 경험이었다. 안 풀려도 멈춘다고 생각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희, 작가의 길에 들어서다


고등학교 졸업했다. 서울대에 가고 싶었지만, 떨어졌고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고, 죽어서도 좋은 화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도 하나의 과정으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했다. 대학 가서도 매일같이 그렸다. MT를 가건 미팅을 하건, 매일 작업실에 갔다. 단 30분이라도 무조건 그렸다.

 


“12시 15분이라는 시간이 긴장감을 줬다. 마지막 차 시간이 12시15분이었다. 4년 동안 수원에서 통학하면서 매일 그 시간이었다. 중간에 나갔다 와도 30분을 그렸다. 융통성이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그런 습관이 쌓였을 때, 좋은 화가의 길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과제 잘하고 학점 잘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학 때도 일상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수업도 열심히 했지만, 수업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만든 것이 스터디 그룹이었다. 작가들을 주제로 공부를 많이 했다. 작가도 많이 만났다. 상도 받았다. 『예술가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도 냈다.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졸업을 했다. 부모님께선 교사가 되라며 교육대학원을 권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일반대학원이었다. 조교를 했다. 문제는 조교를 하면 실기를 못한다는 점.


그가 선택한 것은 자투리시간 활용하기. 그 시간을 활용하니 학부생보다 실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개인전도 열었다. 25살 때였다. 개인전을 하겠다고 부모에게 기댈 형편이 아니었고, 공모전에도 숱하게 떨어지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또 다른 길도 찾았다.


“대학원 졸업할 때가 됐고, 혼자 작업을 해 나갔다. 그림만큼 잘 하는 게 뭘지 생각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 미술전문지에서 글을 쓰면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지원을 했고, 글 쓰는 일을 하게 됐다. 작업이 차츰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라 회사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고 말씀 드리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붓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는 것. 일을 시작하면서 다짐했다. 네 시간을 내 작업시간으로 삼자. 새벽 1시에 들어오면 새벽 5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1~2시간 눈 붙이더라도 그렇게 했다. 하루에 3~4시간 자고, 주말엔 자신의 그림을 그리면서 남들과 똑같이 일했다. 그리고 개인전도 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도 굳혀갔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 빈혈도 심해지고, 어지럼증도 있고, 가만있으면 머리도 띵하고. 갑상선에 혹도 생겼다. 병원에 갔다. 다행히 양성이었다. 내가 이일을 사랑한다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피하지 않고 부딪혀서 해결하고 걱정과 두려움에 집착하지 않으면, 평상심을 찾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니, 잘 풀리더라.”


열심히 하니, 기회도 왔고, 그 기회가 오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준비를 했다. 김지희 작가의 삶의 스타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알았다. 기회가 당장 다가오지 않아도 준비를 하고 있으면 기회는 언젠가는 온다는 것을. 20대 안에 북 아트페어에 나가자는 꿈을 키웠고, 계속 준비를 했다. 미술상을 수상하면서 결국 뉴욕 아트페어에 초대받았다. 그의 깨달음이었다. 당장 눈에 띄지 않아도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다가온다는 것을.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하고 아무도 날 지지하지 않고, 친구들보다 환경이 나쁜 것 같아도, 오히려 그게 내겐 좋은 기회였다. 절실하게 내 길을 걸었다. 외롭고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주변의 조언도 좋지만, 진심으로 고민하는 당사자는 자신이다. 부모도 나만큼 진지하게 고민 못한다. 자신을 꾸준히 일관되게 들여다보면, 내 길이 보인다. 나도 운이 좋았다. 젊은 작가들이 화단에서 주목받는 시대가 됐고, 활동무대도 넓어졌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사랑 받을 수 있는 건 운이 좋아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단순하게 자신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행복한 약속을 하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


Q&A

 


연애할 시간이 있나?


그 와중에도 연애를 계속 했다. 나도 바쁘고, 그도 바쁜, 같이 바쁜 사람을 만났다. (웃음)


외모는 새침해보이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는데, 얘기를 들으니 배울 게 많다.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을 텐데, 노하우가 있다면?


어렸을 때,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렸던 것이 그림이었다. 작업하면서 스트레스는 별로 안 받았다. 잘 안 그려질 때도 그림이 좋아지는 것에 대한 만족이 있었다. 그림, 글 모두 해소하는 것에 가까웠다. 외국어도 꾸준히 공부해서 잘 하는 게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하면 되더라. 해외에서 인터뷰를 하면 물어볼 질문이 빤하니 거기에 대한 준비를 했었다. 해외에 나가 유명 평론가랑 인터뷰를 한 적도 있는데,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 그 전에 너무 바빠서 인터뷰 준비를 제대로 못했는데, 바쁜 와중에 100개의 영작을 틈틈이 했다. 비행기 안에서 그것을 외웠다. 그 분을 만나 다행히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인터뷰를 했다.


낸시 랭과 살짝 비슷한 것도 같고, 롤모델이 있나?


낸시 랭과 그림이 약간 비슷하다. 캐릭터에 가까운 그림들. 낸시랭은 팝아트고, 그래서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화가도 다양한 모델이 있으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었을 때, 롤모델이 눈에 띄지 않았다. TV에도 나오고 작품 활동도 일반인들에게 비춰질 수 있을 만큼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요즘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런 활동이 아티스트들이 살아가는 길인 것 같다. 낸시 랭은 방송활동이 적성에 맞아서 잘 하지만, 난 퍼포먼스 이런 걸 잘 못한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낸시 랭처럼 액티브하게는 못해도 다른 방향에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나 작품 위주로 관객과 계속 만나지 않을까?


동생이 의상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엄청 반대를 했다. 김지희 작가를 뵈니 죄책감을 느끼는데, 지금이라도 하면 늦지 않았을까? 미술 하는 게 돈도 많이 들어서 가정에서 뒷받침도 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후원을 하면 할 수 있을까?


정말 하고 싶다면 박봉일 수도 있고, 돈을 못 버는 한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한다. 나도 화단에서 힘든 모습만 주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서른, 마흔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스라는 답이 나오면 후회 없이 할 수 있다. 성공 여부보다 내가 이 일을 해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어렸을 때 롤모델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화가로 살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나?


어디선가 들은 게 있으니 그랬겠지. 지금도 왜 사람들은 화가라고 하면 가난하고 힘들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랬긴 하다. 음악이나 다른 예술분야에선 스타가 있는데, 미술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역사에서 많은 화가들이 가난하고 요절한 사람이 많다보니, 힘들게 살다가 죽어서 조명을 받고 그러다보니, 그런 것 아닐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식사를 조심한다. 인스턴트와 같이 좋지 않은 것을 안 먹는다. 과음하지도 않고. 담배 안 피고. 스트레스 평소에 안 받으려고 노력하고. 집에 갈 때도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는다. 술 마실 때 너무 늦게까지 마시고 그러지 않고, 먹는 것부터 조심한다.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