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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01:01 메종드 쭌/무비일락

어린 날, 친구 놀려 먹을 때 쓰던 단어들. 바보, 똥개, 축구, 천치, 온달 등 많았다. 그 가운데 똥개. 개 중에서도 멸시와 천대를 받고 인구(人口)에 가장 많이 씹혔던 존재였다. 똥을 핥아먹는 개였고, 이른바 족보도 없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밥 구걸하는 개, 똥개였다. 


뭐 어설프지만, 좀 어린 시절, 진짜 양아치를 꿈꿨다. 건들건들, 유유자적, 허허실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닐 수 있는.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지닌 'A급' 양아치. 그러나 그리 되지 못할 팔자였나 보다. 어설픈 B급 양아치도 되지 못했다. A급 양아치 선망은 여전하지만, 나는 그냥 대세를 따르는 순응자로 살아가고 있다. 간혹 궁금하다. 내가 설계했던 그 양아치,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의 도플갱어?   


똥개, 양아치. 세상은 그들을 루저 혹은 떨거지라고도 부를 것이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부족에 따른 잉여인간. 이른바 잘 나가지도 못하고 학벌, 돈, 빽 어느 하나 기댈 곳도 없다. 세상이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 한 번 제대로 던져줄 리도 무방하다. 소외되고 배제된 아웃사이더에게 세상이 왜 눈길을 던지겠나.


꼰대들이 하는 말이래야, 고작 이런 말일 것이다. "너 그 따위로 살래?" 판에 박힌 으름장. 아니면 "인생은 여차저차하니까 이래저래 살아라" 고리타분한 일장 훈시. 세상에 없어야 할 존재처럼 개무시하는 세상의 작동원리가 있다. 화폐가 심화시킨 경쟁구도에서 낙오한 자들에게 이곳은 동정없는 세상. 그러고선, 이런 말도 내뱉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위로하는 척, 멘토링 하는 척, 자신들이 펼쳐놓은 그물에 포획된 먹잇감을 살살 달랜다. 그들이 날뛰면 자신이 만들어놓은 그물망이 찢어지거나 흠집이 생기거든.  


<똥개>. 그 잘난 분들이 세팅해 놓은 세계 밖에서 부유하는 평범한 청춘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만의 소박한 꿈을 품고 사는 이른바 열외자의 삶.

 

그 중에서도 "아부지는 경찰, 내는 양아치"라고 읊조리는 청춘, 차철민(정우성)이 있다. 정우성이 똥개? 양아치?

 

사실,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다. 당대 최고의 미남배우이자 청춘의 아이콘을 '똥개'이며 '양아치'로 전락(?)시키다니! 곽경택 감독, 큰 맘 먹었구나.  

 

정우성은 똥개다! 


<똥개>의 콘셉트, 명확하다. 정우성, 망가뜨리기. 청춘, 반항, 자유의 아이콘인 그를, 여전히 꽃미남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같은 그를, 하릴없는 양아치 '똥개'로 바꿔치기 하기. 정우성은 망가지기로 작정했고, 곽경택 감독은 그를 망가뜨리기로 합의했다.


망가지기로 작정한 정우성, 그때까지 쌓아온 이미지에 한 방 날린다. 생각해보라. "제 친구입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행복이라나요." 광고에서 그의 친구는 이런 멋진 멘트 날려주셨다. 근사한 식당, 폼 나는 명품 정장을 입고 아름다운 고소영을 향해 미소를 띄우며 카드에 사인을 하던 그다. 멋있다. 아름답다. 그것을 코스프레처럼 입고 있던 그였다.

 

<똥개>의 그는 다르다. 세상만사 귀찮다는 표정에,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삐딱하고 구부정한 어깨로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긴장 풀린 자세로 일관한다. 코에서 액체까지 질질 흘린다. 정우성에 대한 환상을 깨기로 작정했다.


정우성, 말한다. 이미지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똥개>를 선택했다. 노력한 흔적, 엿보인다. '똥개' 같기도 하다. 느릿느릿, 뮝기적뮝기적, 어리버리, 어영부영. 여느 길가에서 볼 수 있는 똥개다. 방바닥 긁으며 TV를 보며 소일하고, 계란 프라이 하나를 놓고 아버지와 싸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토라진다. 싸움을 걸어오는 동네 양아치들에게 "겉저리에 밥 좀 묵고하자. 어차피 싸움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 아이가"라며 그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무심한 듯 시크함.

 

친구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가 속한 MJK(밀양주니어클럽, 당연 'K'라는 철자법, 오류다!)의 멤버들, 별 다를 바 없다. 엉뚱한 꿈 하나씩 간직한 시골의 똥개모임. 그들 역시 소박한 언저리의 삶이다. 도시의 입장에선 루저들이고, 양아치에 똥개다. 감독이 너무 기름을 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면도 있다.  

 


차철민에게 붙여진 똥개라는 별명, 사연이 있다. 철민을 낳고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 죽고 나자, 이집저집 밥동냥하면서 키워진 데서 유래했다. 아버지가 똥개를 키우는 방식도 도시의 것과 다르다. 사람을 죽고 살리는 문제나 감옥에 들어갈 일이 아니라면, 똥개가 하는 대로 내비둔다.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하나, 똥개가 친 사고를 뒷수습하고, 부자간에 계란 프라이를 놓고 아웅다웅하면서도 속 깊은 정을 품고 있다. 하나 같이 선한 사람들. <똥개>의 약점이다. 

 

정우성 또한 약점이다. 똥개 코스프레에도 불구, 그만의 이미지와 모습, 살아 있다. 숨길 수 없는 아름다움. 멋진 놈은 아무리 코스프레를 해도 멋지다. 기침, 가난, 사랑만 숨길 수 없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 또한 그렇다.

 

까불지 마라, 확 물어 삔다, 콱 쌔려뿔라.


어쨌든 그렇게 띄엄띄엄한 똥개도 눈이 뒤집힐 때가 있다. 허허실실 똥개 같아도 그만의 기준이 있다. 무기력하게 흐느적 거리는 듯해도, 철민은 정의파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 없는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고, 있는 놈은 밖에서 떵떵거리는 현실, 외면하지 않는다. 잔머리 굴리지 않는 사람의 특징이다. 아니다 싶으면 달려드는. 철민 역시 그렇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그것이 똥개의 진수 아니던가.

 

영화는 한결 같다. 조미료나 향신료, 뿌리지 않는다. 싸움도 정직하다. 생생하다. 속된 말로 개싸움. 오로지 상대방의 피를 봐야겠다는 정신 하나로 똘똘 뭉친 쌈마이들의 맞장뜨기. 살과 살이 맞부딪힌다. 똥개가 감옥에서 펼치는 결투신,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똥개>는 어느 소도시의 일상을 과장되지 않게, 소박하게 담았다. 어깨에 힘을 뺀 티도 난다. 그런 한편으로 너무 정직하다고나 할까. 경박한 오버 액션과 말 장난으로 치장한 허접한 코미디보다는 낫지만, 지나치게 담백하다. 

 

다만, 잉여에게 눈길을 준 것에 나는 더 집중한다. 우리는 늘 크고 빛나는 반짝이는 성공에만 집중하고 관심을 주지 않았던가. 세상엔 빛나지 못하는 언저리 청춘들이 더 많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까지 빛나지 않을 것이라 보장도 없다. <똥개>는 잉여를 구박하고 내친 어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영화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 어른들, 치졸하다. 그들은 여전히 언저리 청춘에게 열패감과 패배감을 주입시킨다. 고부가가치 인간형 양산에만 매몰돼 있고, 그들만 바라본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인간형 양산에만 골몰한다. 이명박은 그들의 아바타였고, 박근혜라는 또 다른 아바타를 내세우려고 한다.

 

그들에게 똥개를 풀어야 한다. 한 번 물어서 절대 놓지 않게끔. 다 물어라, 똥개야. 그래, 나도 양아치 똥개가 되고 싶었다.

posted by 낭만_밤9시의커피 낭만_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