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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0 20:57 메종드 쭌

작년 2010년, 내가 가장 사랑한 드라마는 <파스타>였다. 아니, 넌 라임과 주원의 <시크릿 가든>에 열광했던 거 아녀? 하고 되물으면, 아니, 난 <파스타>의 손을 주저함 없이 들어준다. <시크릿 가든>, 좋았지만 <파스타>의 폭풍 매력을 넘어설 순 없다.

<파스타>가 끝나고서도, 후유증은 한동안 갔다.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나는 중간에 멈춰섰다, 아니 그것을 꿈꿨다. 붕셰커플의 짠한 키스가 있었던 건널목 키스 때문이었다. 건너편에서 나의 붕어(극중 서유경(즉 공효진)의 별명이었다)가 건너오고, 중간에 멈춰선 나는, 그녀의 입술을 훔친다. *^^* 아, 부끄러버랑~ 그래, <파스타> 후유증!


허나, <파스타>의 주인공은 '파스타'가 아녔다. 파스타 배틀이 펼쳐지고, 파스타 블라블라 했지만, 파스타는 그저 거들 뿐. 파스타에 마음을 뺏기진 않았다. 사실, 그리 파스타가 맛있게 보이지도 않더라. 파스타를 뒤켠으로 밀어낸 로맨스와 정치가 돋보일 뿐.  

그래서, 그땐 몰랐다. 파스타가 향으로 승부하는 음식일줄이야. 그 다음이 맛이고, 온기란다. 그러니, 파스타에 반드시 허브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 턱이 있나. 오래된 기억이지만, 파스타를 좋아했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늘 까르보나라만 시켰고, 나는 한때 까르보나라에 중독됐다. 크림이 달달하기만 했던 그때.

알다시피,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라면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대신, 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귤이 되는 경우라고나 할까. 한국에선 파스타가 라면급이 아닌 엘레강스한 요리 비슷하게 세팅됐다. 약간의 허영과 사치가 가미된 것도 사실이고. '이탈리아'가 주는 에스프리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표준화된 조리과정과 재료를 덕분에 전 세계에 쉽게 퍼졌고, 그 때문에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 파스타다.

안동의 양반 가문인 듯한데, 권씨 성을 지닌 저자(권은중)의 파스타는 좀 다르다. 홀로 파고든, 《독학파스타》다.

그는 파스타의 표준화된 조리과정과 재료를 존중하지만, 존중이 고집에 머물지 않는다. 좀 더 창조적으로 나아간다. 말하자면, 권은중이라는 진짜배기 재료를 넣는다. 먹는다는 것에 대한, 그의 철학을 보자.    
 
"똑같은 요리라도 먹는 환경과 사람이 달라지면 당연히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음식이 가진 고유한 특성도 현지에 맞게 적용할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p.249)

알 덴테(al dente). 파스타 쫌 안다는 사람들이 거들먹거리는, 알 덴테. 즉, 너무 부드럽지도 않고 과다하게 조리되어 물컹거리지도 않아 약간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 씹는 촉감이 느껴지는 정도로 파스타의 최적 상태로 일컬어진다. 중간 정도로 설 익혀 꼬들꼬들하고, 치아에 씹히는 맛이 있는, 파스타의 헌법(?)이다. 꼬들꼬들한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상태다. (커피도 꼭 그런 게 있다. 자신만의 미각이나 후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와서 들이대는 '거들먹들'이 꼭 있다.)

그런데, 이 안동 남자는 알 덴테를 좋아하지 않는다. 퍼진 라면을 좋아하는 자신의 입맛따라 스파게티도 약간 퍼져야 제맛이라고, 파스타 헌법에 반기를 든다. 한 마디 더 붙인다. "퍼진 면발에 양념이 좀 더 잘 묻어난다."

오호~ 자신의 입맛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면의 상태를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파악하고 있다. 파스타를 하면서 이 안동 남자는 좀 더 자신을 잘 알게 되고, 변했을 것이다. 파스타가 삶에 틈입하면서 생긴 긍정적 변화. 파스타가 사람을 바꾼다.

파스타는 한 세계도 바꾼다. 이 남자, 생활 패턴뿐 아니라 사고방식도 변했다. 파스타는 거들뿐, 이 아니라, 파스타가 바꿨다! 이 남자, 주말에 골프를 끊은 대신 신선한 해산물을 사러 시장이나 마트로 향한단다. 유명 파스타집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거기보다 10배(자칭)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여년 만에 청바지를 다시 입었다. 요리하는 사람은 위대한 창조자라는 경외심까지 갖게 됐다. 멋진 변화다. 

커피 덕분에 바뀐 나로선 이런 변화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임상실험으로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먹는 것을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멋진 일인지도 안다. 저자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재료를 고르고 요리를 만들고 사람들과 나눠 먹는 과정은 예술을 창작하고 발표하는 감흥과 다를 게 없었다."(p.7)

이탈리아 요리사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복잡하면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다." 복잡하지 않은데서 창조가 나온다. 그래서, 이탈리아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창조성이다. 독학으로 다룬 파스타는 그래서 느끼하지도 않고, 거들먹거림이라곤 없다. 좀 안다고 젠체했다면, 이 책은 목에 걸렸겠으나 그런 게 없다. 안초비 대신 멸치젓을 쓰고, 간고등어로도 파스타를 만들 수 있음을 알려준다. 표준화됐다고 그대로 따라야 할 이유는 없는 법이다. 

자신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요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창조는 곧 자신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지금-여기의 어떤 트렌드를 당최 이해할 수 없고, 불편하고 불만이다. 하나 같이 똑같은 먹을거리를 내놓는 이 땅의 거대 체인들 말이다. 표준화된 재료와 조리 방법, 하나같이 똑같은 사무적인 접대 태도로 그들은 어딜가나 비슷한 것만 내놓는다. 먹을거리뿐 아니라 인테리어까지 대동소이한 그곳에서 우리는 획일화된다. 거대 자본이 원하는 바다. 비약해서 그들은 파시즘이다. 질서정연함과 반듯반듯함으로 효율 자체가 목적인. 개성이나 창조성은 당최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파스타 문화의 정수는 재료 자체의 고유성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재료를 써서 즉흥적으로 요리하는 창조성에서 우러나온다."(p.166)
 
그것은 조미료와 같다. 저자의 말마따나, 조미료는 모든 음식의 맛을 평등하게 만든다. 기계적인 평등. 사람들은 그것에 중독되고, 그것이 진짜 맛인양 착각한다. 생의 감각을 하나씩 잃고 있는 셈이다. 오호 통재라~

감칠맛 제대로 나는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선 조미료가 아닌 계절 나물과 해산물 등을 넣어야 하듯, 파스타도 그렇고 모든 음식이 그래야 한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재료 고유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먹을 것을 다루는 사람은 그래서 달라야 한다. 창조성의 근간에는 이런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 무엇보다 음식을 다루는 태도와 자세가 중요한 이유다.  

"좀 더 건강한 식재료로 파스타의 원형질을 잘 살릴 방법은 없을까? 나는 이런 고민이야말로 요리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p.119)

독학으로 했다지만, 저자의 파스타는, 비록 맛을 보진 못했지만, 그 핵심을 꿰뚫는 심미안과 요리를 대하는 태도 덕분에 맛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커피를 만드는 나는, 커피를 통해 그것을 깨달았으니까. 더구나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고 싶은 사람이 아닌 그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요리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심정 또한 충분히 안다. 이해한다. 나 역시 그랬고, 그러하니까.  

"요리를 하다 보면 막연하게라도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꼭 요리해 줘야지, 라고. 오감을 최대한 동원하는 창조적 작업인 동시에 혼자 해내야 하는 고독감 때문인지 요리에 빠지다 보면 누군가에는 인정받고 싶은 바람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p.142)

내가 커피를 하는 이유, 커피가 혁명을 추동했니, 커피가 소통과 관계의 매개가 됐니, 커피가 세계의 불공정함을 보여주니, 세계의 점들을 연결해주니,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니, 블라블라해도, 닥치고 커피 한 잔! 그 한 잔은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려주고픈 것이다. 곧 내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꼭 내려주고픈 것이 내 커피다. 미안하지만, 그 커피를 위해 다른 사람들은 임상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ㅋ  

아주 재밌고 흥미진진한 책은 아니지만,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인 부분도 많았다. ‘서로 다른 세상이 만나 +α가 되는 세상을 만든다’ 는 의미의 알파라이징(alpharising). 커피 만드는 남자가 파스타 만나는 남자(책)을 만나 +α가 되는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나는 '파스타 알파라이징'이라고 명명한다.

나는 기대한다. 저자가 꿈꾸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조용한, 물가 근처라서 창밖 멀리 바다가 강이 굽어보이는 동네에 있는 작은 파스타집. 저자가 이 파스타집을 찾아오면 달달한 커피 서비스를 약속한다는데, 어찌 가지 않을쏜가. 기왕이면 그 집에 갓 볶은 좋은 커피를 들고 찾아가서 (권은중) 주인장에게도 권해주리라. 파스타향과 커피향을 맡고 예쁜 여자들이 몰려들겠지? 아, 기분 좋다.

p.s.

1. 오타가 있다. 67페이지의 붇지(->붓지), 안팍(->안팎)이다. 2쇄에는 고치겠지?

2. 저자는 종종 '촌스럽다'는 표현을 쓰는데, 영 걸리고 좋지 않다.
저자가 적을 둔 신문사(한겨레)에서 이봉수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한 번 지적한 적도 있었다. 촌스럽다는 표현은 대체로 '세련되지 못하고 어수룩하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데, 그것은 '촌'을 부정적인 곳으로 인식하는 도시내기들의 오만이자 거들먹거림이다.

실상 '촌'이란 말 자체는 그렇지 않은데도 '촌스럽다'는 말이 맥락에 따라 부정적 의미로 자주 쓰이는 것이다. 이봉수 시민편집인은 '촌스럽다'는 단어를 남발하는 것에 대해 언어의 공공성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신문기자인 저자는 그래서 더욱 주의했어야 했다. 2쇄를 찍을 땐, 다른 표현으로 고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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